총 139분 중 39분
2021
시즌 2개, 그리고 영화
시즌 1: 5화 “이름 없는 감각”
출연: 하인즈, 위스퍼레인
장르: 드라마, 판타지
프로그램 특징: 계속된다. 질문이 튀어나오던 자리를 빼앗은 정적은 형언할 수 없는 감각을 준다. 그 정적은 가장 완벽하고 적절한 시간에 퇴장해야 한다.

지인 타로 커미션
인간계에 내려온 천사 하인즈와 인간 칸타빌레



“그렇다면 시간을 정해놓고 커피를 마셔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이것은 의사로써의 소견이 아닙니다. 그저 제 습관일 뿐이지요. 그렇지만 정해진 일과를 수행해나가는 것 뿐만으로 가치 있는 하루도 분명 있을 겁니다.”

칸타빌레는 새가 날아다니는 모습을 바라 봅니다. 그것은 커피 마시기 습관화를 하기 전까지 칸타빌레에게 있어 유일한 낙이었네요. 앙상한 나뭇가지 위에 새가 다섯 마리 앉아 지저귑니다. 더 날아갈 수 있을 텐데 항상 이 곳에 와주는구나. 칸타빌레는 다섯 마리의 새가 네 마리가 될 때까지 창 밖을 바라보며 그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를 채웁니다. 어제 왔던 새와 오늘 왔던 새는 같은 아이일지, 이곳에서 저곳이 보이는 만큼 저곳에서도 이곳을 응시하고 있을지, 그들은 쉬어가는 것일지 머무르는 것인지… 생각에 골몰하다 보면 핸드폰의 알림이 울립니다. 커피를 마시러 갈 시간이야. 네 마리의 새들을 바라봅니다. 나도 저 지저귐은 함께 노래할 수 있을까.

칸타빌레는 본래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시작은 어릴 적 배워 온 피아노였지만 다른 악기들에도 소질이 있었어요. 바이올린과 하모니카, 커다란 첼로와 오르간에 매료된 적도 있었지요. 운명처럼 만난 악기는 커다란 하프였군요. 단정하지만 아름다운 블랙 드레스를 입고 홀에서 연주회를 열었던 적도 있습니다. 자신의 뜻보다는 에이전시의 뜻이었지만 그들을 신뢰하였어요. 그렇게 마음껏 연주하고, 박수를 받고, 꽃다발을 품에 안는 나날이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하였지요. 누군가 지금 삶에 만족하는지, 다시 태어나도 이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해서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대답해왔습니다. 사실 지금에서야 생각해본다면 다른 삶에 대해서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겠죠. 칸타빌레는 언제까지고 현을 연주하며 꼿꼿하게 음악을 할 것이라 이야기해왔습니다. 하피스트 칸타빌레야말로 스스로를 말할 수 있다고 여겼으며 하인즈는 그것을 종종 관객석에서 지켜보곤 했습니다. 용감한 여성이군. 놀랍게도 그것이 칸타빌레에게 처음 느꼈던 감상이었습니다. 재능이 있는 사람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요. 이쪽에 앉는다면 제 1 바이올린 소리가 잘 안 들릴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네, 이번은요. 하인즈는 같은 공연을 많게는 세 번까지 보는 타입입니다. 하프 소리를 가까운 곳에서 듣고 싶은 날에는 늘 칸타빌레의 공연으로 예매하였고요. 하프를 다룰 때 거침이 없는 물결과도 같은 진행이 마음에 들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인간사와 겹쳐서 보기도 하였을런지요. 하인즈는 성실하니까요.

하인즈는 자리를 고쳐 앉습니다. 이 병동은 사람이 많음에도 생기가 느껴지지 않군요. 때문에 연주회 등을 찾았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천사에게도 휴식이 필요한 법이니까요. 이곳에서의 하인즈는 잠시 의사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재활을 돕는 일인데 그 과정에서의 이모저모를 지켜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직업병일 지도 모르겠군요. 천사. 하늘의 사자라고 하지만 하인즈는 그다지 로맨틱한 존재는 아닙니다. 나팔을 불면서 축복을 하는 이도 아니고, 성검을 휘두르며 악의 존재를 처벌하는 쪽도 아닙니다. 복음을 전파하며 믿음, 소망, 사랑 중 제일은 사랑이라고 속삭이는 쪽과도 제법 거리가 있죠. 하인즈는 인간의 진위를 파악하고자 이곳에 남아 오랜 시간 죽음과 생에 가장 끝에 있는 이들을 바라보는 쪽에 가깝습니다. 신의 눈은 어디에도 있다고들 하잖아요.

다만 … … 지금은 그것도 옛일이 되었군요. 지금은 잠시 자신의 본의를 접어두고서 사적인 의도로 사람들을 관찰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프라이버시 한 범위 내에서도 말이지요. 이전에는 공원을 산책하고, 병원을 거닐었다면 비로소 병원 안의 일원이 되는 것입니다. 생과 죽음이 어우러진 공간에서 하인즈는, 커피를 마십니다. 굳이 음식을 먹거나 수면을 취해야 돌아가는 몸은 아니지만 이상하게 보일 필요는 없으니까요. 시간을 정해놓고서 커피를 마십니다. 오전 열 시, 오후 세 시. 시계바늘이 눈금을 가리키면 뜨거운 물을 넣고 까만 커피 분말을 흐트립니다. 설탕이나 프림은 아직 입에 맞지 않는군요. 가공된 것 없이 그대로의 맛을 즐긴다고 하지만, 아직도 인간의 음식이 익숙하지 않은 것입니다. 인간의 근육을 짚으며 상담해주는 것은 익숙해졌는데도 말이지요. 그런 스스로에게 내려주는 선물이 바로 칸타빌레의 연주회였군요. 리사이틀이나 오케스트라를 처음 보았을 때가 떠오릅니다. 저 연주는 누구를 위한 연주였을까. 제 상사인 신을 위한 곡조라고 하지만 인간들은 나약해서 바로 말하지 않는 습관이 있으니까요. 칸타빌레의 인터뷰도 두 번 정도 읽은 기억이 납니다.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지금처럼 하프를 연주하겠다고 적힌 기사. 푸른 눈이 떠오릅니다. 마치 물안경을 낀 채 바다나 수영장을 헤엄치는 것처럼 투명하고도 맑은 눈.

그 맘때였을까요. 더 이상 칸타빌레의 이름이 리사이틀이 아닌 자신의 진료 차트에서 보게 되었던 것은. 칸타빌레는 건초염을 앓고 있다고 했습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지만 예민한 터치가 필요한 피아니스트에게는 아주 취약한 질병이지요. 소견서를 보아 하니 이전 병원에서도 차도가 없었던 듯합니다. 증상은 거의 사라졌지만 이를 기억하는 칸타빌레 본인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던 것이겠지요. 그렇게 아름다운 홀이 아닌 생기가 사라진 병원에서 마주한 칸타빌레의 푸른 눈은 거침 없던 그 선율의 진행과도, 어디든 헤엄칠 수 있을 것 같은 포부가 담긴 인터뷰와도 전혀 다른 인디고였습니다. 칸타빌레는 손을 다친 것보다도 나아갈 수 없다는 마음에 상처를 입었겠지요. 하루 일과를 나누다 보면 머뭇거리는 모습에서 알 수 있었습니다. 다섯 마리의 새가 네 마리가 되어요. 그때까지 보고 있는 건데 … 아니에요. 이런 건 너무 불필요한 정보 같아요, 선생님. 하인즈는 다시금 처음부터 차근차근 말해달라면서 세상에 불필요한 건 없고 당신의 일과에 역시 불필요한 것은 없다고 일러줍니다. 그들은 쉬어가는 걸까요 머무르는 걸까요. 날아갈 힘이 있음에도 찾아주는 것인지 … 거침 없는 행보와 반하여 머무르기만 할 뿐인 스스로에게 가장 상처받은 것은 본인이겠지요. 하인즈는 인간의 이런 면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다친 마음을 끌어안은 채 살아가는 것도 분명 살아가는 것이니까요.

그렇다면 시간을 정해놓고 커피를 마셔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이것은 의사로써의 소견이 아닙니다. 그저 제 습관일 뿐이지요. 그렇지만 정해진 일과를 수행해나가는 것 뿐만으로 가치 있는 하루도 분명 있을 겁니다.

물론, 강요는 아닙니다. 흘려 들어도 괜찮을 정도로, 무의미한 행동일 수 있어요. 칸타빌레는 커피를 마십니다. 처음이니 오전에만 마셔도 괜찮아요. 전 오전 열 시와 오후 세 시에 마시고 있습니다. 칸타빌레는 시간에 맞춰 커피를 마시고 병동을 들립니다. 여전히 예전처럼 하프를 연주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은 들지 않지만,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내심 생각해버리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끝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커피를 마시고, 이야기를 하고… 하인즈는 연주회를 이전보다는 뜸하게 찾지만 여전히 리사이틀과 여러 공연에 흥미가 있군요. 이따금씩은 그곳에 칸타빌레가 서 있는 생각을 합니다. 잠시 몸을 둥글게 말고 앉아 있지만 언젠가는 다시 저곳에서 거침없이 나아갈 사람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거대한 하프를 끌어안고 손목의 각도를 세우는 모습. 멈춘 인간을 나아가게 하고 다친 손을 다시 연주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어찌 보면 천사로써 월권일 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휴가 기간 중 이 정도는 눈감아주지 않을까요. 오후 세 시가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함께 커피를 마십니다.

만약 제가 노래를 하게 된다면 그 때도 흥미를 잃지 않으실까요? 칸타빌레는 테이핑 된 손으로 커피잔을 내려놓습니다. 언젠가의 가능성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칸타빌레를 보며 하인즈는 커피를 한 모금 넘깁니다. 새가 지저귀는 것을 좋아하셨는데 그로 인해 노래에 흥미가 생기셨다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칸타빌레의 눈은 여전히 인디고입니다. 아니, 원래부터 인디고였을 테니까요. 칸타빌레는 다시금 말을 잇습니다. 선생님은 제게 천사와 같으세요. 신을 만나게 되었다면 그건 선생님 덕분이라서 … 돌아갈 곳을 알지 못해도 무섭지 않아요. 하인즈는 잠시 싱거운 긴장에 잠기는군요. 설마, 들킨 건가 … 그렇지만 신을 만나게 할 맘은 아니었는데 …

돌아갈 곳이라, 정해져 있지 않습니까.

금조를 닮은 연주자는 눈빛을 마주합니다. 거침없고 물결 같은 그 눈을요.


레몬농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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