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139분 중 39분
2021
시즌 2개, 그리고 영화
시즌 1: 5화 “이름 없는 감각”
출연: 하인즈, 위스퍼레인
장르: 드라마, 판타지
프로그램 특징: 계속된다. 질문이 튀어나오던 자리를 빼앗은 정적은 형언할 수 없는 감각을 준다. 그 정적은 가장 완벽하고 적절한 시간에 퇴장해야 한다.

지인 타로 커미션

인간계에 내려온 천사 하인즈와 인간 위스퍼레인


 

위스퍼레인은 커피를 마십니다. 커피는 쓴맛이 감돕니다. 기호에 따라서는 설탕이나 크림을 넣어도 좋다고 합니다. 그렇게 들었어도 한 번도 넣어서 마신 적은 없었네요. 입에 감도는 감미료의 맛과는 영 친해지지 못했나 봅니다. 카페인을 잠시 줄이고자 한동안 마시지 않았던 아무것도 넣지 않은 블랙 커피의 맛은 여전히 씁니다. 머리를 천천히 빗고 외출을 생각하는군요. 위스퍼레인은 주로 어린이들이 다니는 무용 교습소의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학교 재단으로 위스퍼레인 역시 어린 시절 이곳에서 가르침을 받았군요. 

 

오전에는 외부 활동이 있고 오후에는 학교가 끝나고 돌아오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군요. 저녁에는 어른들을 위한 취미 발레 교습도 하는데, 원장 선생님은 힘들다면 조금 쉬어도 된다고 할 만큼 제법 일정이 빽빽합니다. 선생님은 학생 시절부터 너무 성실하다니까요.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위스퍼레인은 만약, 힘에 부치게 된다면 이야기하겠다고 작은 목소리로 대답합니다. 차분하게 음악이 흐르는 교실. 리듬 댄스, 현대 무용, 발레… 커다란 글씨로 적혀있는 교재가 걸려 있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다르다고 하는데, 위스퍼레인은 가르치는 것에 소질이 남다르군요. 프리마돈나가 되는 자신을 꿈꾸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이렇게 계속 무용을 계속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를 느끼기도 합니다. 선생님은 정말 어려운 동작도 쉬운 것처럼 움직여요! 위스퍼레인은 학생의 손목을 부드럽게 감쌉니다. 이렇게 하면 다치기 쉬우니까요… 여기서는 템포를 조금 더 늦추는 게 좋아요… 음악을 듣고 있으신가요? 조근조근 속삭이며 동작을 고쳐주는 위스퍼레인 선생님은 유독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군요. 사실 오전에 있는 외부 활동 역시 아이들과 관련된 것입니다. 소아 병동에서 아이들에게 간단한 놀이를 알려주며 치료를 돕는 것인데, 원장 선생님은 외부 활동까지 맡기게 되어서 미안하다고 연신 사과했지만 이 수업을 준비할 때의 위스퍼레인은 가장 어딘가 들뜬 모양새군요. 간단한 연습 복장과 실내화를 챙겨서 나갑니다.


하인즈는 어린 환자들이 많은 병실을 지납니다. 엊그제엔 응급실 근처를 잠시 지켜보았는데 근래에는 어린이 환자가 많다는 것을 생각해낸 것이지요. 그러고 보니 어린 인간들에 대해서 지긋하게 본 적은 없었으니 한 번 들러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습니다. 게시판에는 아이들을 위한 놀이 프로그램이라고 적힌 공고가 붙어 있습니다. 하인즈는 병원을 좋아하지만은 않습니다. 그곳은 생기가 한 풀 꺾여있는 곳이니까요. 화사한 인간만을 보고 싶다는 건 결코 아니지만 계속해서 머문다면 누구든 마음이 다치기 쉬운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 세상에 머문 지 제법 시간이 지나서인지 하인즈는 어느덧 인간들의 마음 자체에도 흥미가 생긴 모습이군요. 그저 죽어가고 살아나는 인간들의 모습을 지켜볼 뿐이 아니라 다시금 어떤 마음으로, 어떤 삶의 방식을 가지고서 살아가는지에 대해서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든 근래입니다. 신은 인간을 어떻게 창조하였을까요.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영혼이라는 프로그램을 넣고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지켜보는 게 그 역할이라면 과연 그들의 마음 속은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한 때 아닌 궁금증입니다. 동료가 듣는다면 시간도 많구나, 할 법한 시시한 이야기예요. 그렇지만 천사에게 남은 것은 시간 밖에 없지 않을까요? 

 

하인즈는 자판기 커피를 마십니다. 약간 미간을 찌푸리는군요. 이건 너무 단데 … 카페 라떼라고 적힌 버튼을 내려다 봅니다. 음. 다시 블랙 커피를 하나 뽑습니다. 이것도 좀 단데 … 기계에서 내려오는 커피는 모두 이렇게 단 건지 하인즈에게는 그다지 맞지 않는 듯 하네요. 결국 익숙하게 병원 카페에서 블랙 커피를 한 잔 주문합니다. 놀이 치료는 1층 실내 광장이라고 했으니 발걸음을 옮깁니다.


위스퍼레인은 같은 스탭을 몇 번이나 천천히 느린 템포로 밟으며 박자를 셉니다. 아이들은 어렵다고 하면서도 함께 따라가며 빙글 빙글 도는군요. 어린 아이들이 춤추는 걸 지금까지 본 적이 있었던가. 유치원에 산타클로스도 아니고 천사의 깜짝 방문은 달갑지 않을지도요. 더군다나 동화책이나 캐릭터처럼 화려하고 번쩍거리는 모양새도 아니고. 아주 어린이들 대상만은 아니었는지 뒷줄에는 다양한 나이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도 위스퍼레인 선생님이 오셔서 다행이야. 위스퍼레인. 처음 듣는 이름이지만 마치 이전부터 알고 있었던 이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동명이인을 찾기도 어려운 이름일 듯한데. 위스퍼레인은 천천히 스탭을 밟고 빙글 하고 돕니다. 펼쳐지는 치맛자락. 그리고 아이들과 사람들이 모두 한 방향으로 빙글 하고 돕니다. 마치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 같은 광경이군요. 어떤 아이는 넘어졌다가도 해맑게 소리 내어 웃습니다. 병동에서 이렇게 맑은 웃음 소리를 들은 것도 오랜만이군요. 위스퍼레인은 스스로 힘으로 일어난 아이의 신발끈을 고쳐 묶어줍니다. 조심해야 해요. 살짝 웃은 것 같지만 얼굴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희미하군.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즐겁게 울려서일까요. 이 수업이 끝나면 합창 수업이 있다고 합니다. 짧은 수업이지만 아이들과 사이가 좋은 것인지 한 명 한 명 인사를 하러 왔다 가는군요. 아이들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위스퍼레인은 손을 흔들어 줍니다. 

 

그것을 하인즈는 끝까지 같은 자리에서 지켜보고 있는데, 위스퍼레인은 그 시선을 눈치챈 것인지 하인즈에게 다가옵니다. 안녕하세요. 하인즈는 의연하게 인사를 건네는군요. 원래부터 당연히 보고 있었다는 것처럼이요. 위스퍼레인은 살짝 고개를 숙이며 함께 인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처음 오신 것 같은데 … 네. 공고문을 보고 왔습니다. 그런데 전혀 따라서 움직여주지 않으셔서 … 혹시 봄의 왈츠를 좋아하시지 않는가요? 위스퍼레인은 고민하다가 물은 듯 주저하는 모습입니다. 목소리도 작고, 역시 미안한 기색이 가득하네요. 다만 생각지 못한 질문을 받은 하인즈는 머리가 잠시 굳습니다. 병원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은 건 처음이군요. … 따라 했어야 했던 건가. 아, 아니요. 어떤 수업인지 알고 싶어서 보고 있었습니다. 아 … 발레나 무용을 좋아하시나요? 하인즈는 잠시 생각합니다. 호두까기 인형이라면 좋아합니다. 위스퍼레인은 살짝 끄덕거립니다. 저는 이 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위스퍼레인은 교습소의 명함을 건넵니다. 하인즈는 위스퍼레인이라고 적힌 이름을 봅니다. 

 

하인즈는 위스퍼레인에게 들고 있던 커피를 건넵니다. 걱정 마세요. 전혀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병원 카페 로비의 블랙 커피입니다. 위스퍼레인은 얼떨결에 커피를 받는군요. 명함과 주고 받은 커피. 연말이 되면 오페라 하우스에서 차이코프스키의 발레가 올라올 겁니다. 그 때 극장에 함께하지 않겠습니까? 눈이 올 때요. 위스퍼레인은 잠시 동안 말을 잇지 못합니다. 연말 … … 그때까지 발레를 좋아하신다면 기쁠 것 같아요.


하인즈는 턱을 문지릅니다. 위스퍼레인이라는 이름은 어째서 그에게 익숙했을까요. 어딘가 들어본 적이 있는 부드러운 울림입니다. 새로 부탁한 블랙 커피를 마시면서 위스퍼레인의 명함을 바라 봅니다. 아. 그제서야 생각이 났군요. 위스퍼레인이 아직 학생이었을 시절일 겁니다. 그 학교의 작품을 본 적이 있어요. 차이코프스키인가. 러시아 발레 특유의 고전적인 움직임이 머리를 스쳐 지나갑니다. 관객이 많지 않았던 극장에서 보았던 호두까기 인형. 봄의 왈츠를 떠올립니다. 선생님이 되었군. 그렇다면 무대에서는 다시 볼 수 없는가 … 그리 생각하니 조금 다른 감상이 되는군요. 무대 위의 위스퍼레인을 떠올립니다. 일반적인 천사라 하면, 어쩌면 자신보다 이 발레리나가 더욱 가까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갑니다. 겨울까진 아직 시간이 있군요.


극장은 제법 커다랗습니다. 위스퍼레인과는 어렵지 않게 연락이 닿았고 함께 나란히 앉아 호두까기 인형을 관람하게 되었군요. 별나시네요. 그런 사람도 있는 법이죠. 위스퍼레인은 자세를 고쳐 앉습니다. 무대에서 보았던 발레리나가 아이들을 가르치고, 관객이 되어 있다니. 사람의 삶이란 정말 다채롭군요. 위스퍼레인은 많이 망설인 듯한 작은 목소리로 속삭입니다. 저는 무대에 서지 않지만 이렇게 관람하는 게 … 마치 한 때를 생각하게 되어요. 옛날이지만 … 그리고 작별을 생각하게 되어서 … 함께 무대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모습이 마치 엔딩 크레딧을 바라보는 것과 닮아 있습니다. 하인즈는 턱을 문지릅니다. 이 공연이 끝나고 나면 하인즈는 사라져 있을 겁니다. 위스퍼레인은 이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마치, 본래부터 그런 작별이라는 듯이.

 

 

레몬농장님

 

 

 

Cookie 당신은 천사와 커피를 마시지 않았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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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 Snowfla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