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139분 중 39분
2021
시즌 2개, 그리고 영화
시즌 1: 5화 “이름 없는 감각”
출연: 하인즈, 위스퍼레인
장르: 드라마, 판타지
프로그램 특징: 계속된다. 질문이 튀어나오던 자리를 빼앗은 정적은 형언할 수 없는 감각을 준다. 그 정적은 가장 완벽하고 적절한 시간에 퇴장해야 한다.

지인 타로 커미션
인간계에 내려온 천사 하인즈와 인간 포젬카

 


포젬카는 눈을 뜹니다. 아침마다 마시는 커피의 맛은 항상 씁쓸하고, 어딘가 눅눅하게 입안에 퍼집니다. 그렇지만 설탕이나 프림을 타는 성격은 아니군요. 차가운 커피보다는 뜨거운 커피를 선호합니다. 입안에 머금었을 때 적당히 쓰고 드라이함을 유지할 수 있는 쪽이 좋으니까요. 아침에 일어나서 커피 한 잔, 글을 한 편 쓰고 부띠끄 혹은 계피향이 나는 베이커리에 다녀오거나 샴푸와 두피 마사지를 받고 또 한 잔. 저녁에는 마실 수 없으니 이 루틴을 매일 지키고 있습니다. 이렇게 드라이한 것을 좋아하시는군요? 그렇다면 이 원두는 어떠실지요. 바리스타의 제안에 넘어간 적도 있지만 항상 같은 것으로 돌아옵니다. 호화스러운 삶을 사는 것은 아니지만 부족하지도 않습니다. 기분 전환으로 샴푸를 받고 오기도 하니까요. 프리랜서 작가의 삶을 살고 있지만 또 다른 이름으로는 번역을 하거나 여행 잡지사에 한 꼭지 리뷰를 남기거나 혹은 남몰래 강력한 글을 기고하기도 합니다.

이런 글이라면 … 어떤 신문에서 원하죠? 포젬카의 수많은 글을 읽고서 때마다 다른 의문점을 표하는 것은 하인즈입니다. 하인즈는 포젬카의 지인으로 처음 만난 곳은 병원이었군요. 동생, 아니 사촌 형제였을까요. 조카였던 것 같기도 하고요. 포젬카는 정기적으로 받던 검진 차 들렀고, 하인즈는 단순한 문병이라고 했습니다. 위성 도시의 적당한 크기 병원이었던 탓에 늘 사람이 몰라는 곳이죠. 그렇다면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으로 골랐으면 좋았을 것을. 사람이 적은 곳을 구태여 찾다 보니 구석 진 낡은 엘리베이터를 고른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덜컹, 커다란 소리와 함께 전등도 나가고 움직이지 않은 철 덩어리 탓에 두 사람은 그곳에 갇혀 길고 난감한 시간을 보내게 되었네요. 여기, 이전에도 종종 사고가 났다는 것 같은데… 하인즈는 턱을 문지르며 혼잣말을 합니다. 켜지지 않는 전등을 보아 하니 시간이 걸리겠군요. 이크, 하인즈는 이 소식이 달갑지 않습니다. 이대로 시간을 죽이기엔 바쁜 사람인 듯 하네요. 포젬카는 하인즈를 응시합니다. 손목 시계를 보면서 혀를 차는 모습은 영락없는 현대인이네요. 손목 시계에 숫자가 없는 것 같지만 요즘엔 그런 디자인도 제법 있으니까요. 괴짜 회사원인가. 자신에게 꽂힌 시선을 눈치챘는지 하인즈는 어깨를 으쓱합니다. 그 쪽에는 경비실과 통하는 음성 버튼 없으신가요? 있지만 이미 먹통이에요. 포젬카는 검지로 한번 눌러보지만 여전히 무반응인 버튼을 보고 고개를 내젓습니다. 굳은살이 있네요. 펜을 쥐는 분이시군요. 하인즈의 관찰력으로 두 사람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대화를 하게 되었군요. 펜을 쥐는 분이시군요. 그런 섬세한 말로 제게 말을 거는 사람은 이제껏 없었거든요. 포젬카는 신이 나 근래 적었던 여행 기사에 대해서 말합니다. 골든 코스트 말이에요. 황금빛 해변에 대해서 작열하는 태양과 눈부신 여름을 12월에 만끽할 수 있다니, 신의 선물이 따로 없잖아요? 하인즈는 가만히 듣다가 홀로 생각합니다. 신은 그런 부류의 선물을 내리지 않을 텐데. 별이 반대로 흐르는 곳의 지상 낙원 해변 이야기를 계속 하던 포젬카는 하인즈의 빼쭉한 얼굴에 생각했던 반응이 아닌 듯 제가 너무 흥분했네요, 하고서 말을 멈춥니다. 아니에요. 직장 상사가 생각나서. 상투적인 대답에 포젬카는 다시금 미간을 찌푸립니다. 이 티키타카는 아슬아슬하게 잘 이어지는군요. 적당한 연락처를 교환한 두 사람은 그렇게 등을 돌리고 헤어집니다.

하인즈는 병원을 자주 들락날락 합니다. 공원을 거닐기도 하고, 가끔씩 기차를 타고 멀리 떨어진 곳에 다녀오기도 하는군요. 늘 수첩에 무언가를 적고 시계를 보고 공원이 있다면 분수보다는 가로등에 가깝게 걸어 다닙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하인즈는 천사, 그야말로 하늘의 사자이니까요. 항상 크게 다르지 않는 정장을 입고 어디에서도 본 적 없을 무늬의 뱃지를 착용합니다. 하얀색 장갑을 끼는 경우도 있지만 눈에 띈다면 생략하는 편이네요. 병원에서 종언을 고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아주 극소수. 옆을 지켜줄 사람이 없다면 가끔씩 흰 천이 덮여져 있는 방에서 눈빛으로 작별을 고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쓸쓸한 영혼들은 언젠가 동료가 될 지도 모르니까요. 사람들은 이렇게 죽어가고 살아나는군요. 기입을 했다가도 중요하지 않다는 듯 세모 표시를 그립니다. 어린이 병동에도 자주 드나들곤 하는데 동화 속의 천사처럼 곱슬거리는 노란 머리카락을 가졌다면 조금은 덜 무서웠을까요? 이따금씩 아이들은 울음을 터트리기도 하나 봅니다. 무서운 의사 선생님으로 보이는 듯 한데, 하인즈는 의사로 위장했다면 더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네요. 못할 것도 없는데, 다음에는 고려해볼 사항인 듯 합니다. 그날도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지켜보던 때 분홍색 머리카락에 눈매가 곡선으로 빠진 작가를 만나게 된 것이지요. 아파 보이지는 않고,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보이고. 그렇다면 들어주어도 좋지 않겠어요? 글을 쓰는 여자를 인터뷰 한다는 마음으로요. 다만 초장부터 신의 선물이라는 것 때문에 삐걱거리긴 했지만.

하인즈는 포젬카와 비정기적이지만 제법 잦은 만남을 이어갑니다. 일주일에 한 번일 때도 있고, 한 달에 여섯 번이기도 하고. 서로의 스케줄을 보고 유동적으로 만나는 지인이지만, 서로 너무 많은 것을 캐묻지는 않습니다. 하인즈는 그렇게 묻지 않아도 알 수 있고 포젬카는 그 정도 거리감이 마음 편한 쪽이죠. 만나서는 포젬카의 글을 읽고 하인즈의 생각을 말하거나 하인즈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포젬카가 그런 일이 실제로 있나요? 하고서 질문하는 듯 합니다. 안경 너머로 얼마나 많은 사건을 바라 보았는지 포젬카는 하인즈를 보고서 걸어 다니는 사건 보고서가 아니냐고 한 적도 있네요. 실제로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하인즈가 포젬카를 만나고서부터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것은 입에 커피를 가져다 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인간들의 세상에서 나온 음식은 굳이 먹지 않는다는 것이 하인즈의 철칙이었지만, 포젬카와 대화를 할 적엔 악마처럼 검고 뜨거운 액체를 입에 머금게 되었달지요. 브라질의 커피는 지옥처럼 뜨겁고, 악마처럼 검고, 천국처럼 달콤하고 천사처럼 부드럽대요. 포젬카가 입을 떼었을 때 하인즈의 표정은 제법 볼만 했죠. 악마 쪽이 더욱 부드럽지 않을까요. 인간을 회유하기 위해서라면. 또 그렇게 나오신다는 거죠? 하인즈는 다시 한 모금 마십니다. 인간의 음식을 먹지 않기로 한 것은 이들과 거리감을 지키기 위해서였지만, 이런 경우라면 괜찮지 않을까 하며 타협합니다.

두 사람은 만남은 그렇 듯 이레귤러적이라고 할 수 있지요. 포젬카는 여러 가지 글을 쓰고 대다수의 글을 하인즈에게 보여주는 듯 하는데, 하인즈가 특히 눈 여겨 보는 것은 포젬카가 이국의 글을 자신의 언어로 번역해낸 것이네요. 포젬카는 습관상 가장 많이 알려진 여행 잡지 기사를 가장 위에 올려두곤 하는데, 하인즈는 늘 그 순서를 뒤집듯 번역본이나 신문에 작게 올라가는 논평 등을 눈 여겨 보는 듯 합니다. 그것은 제가 번역한 것인데도요. 오히려 그 쪽이 좋습니다. 세계를 녹여내는 것이니까요. 사람의 언어에는 내면이 있는 법. 하인즈는 포젬카의 내면에 노크를 하거나 두드려보거나 또는 자취를 둘러보고서는 고개를 끄덕인 채 발자국이 남아있는 곳으로 다시 걸어가는 행인 같은 자세를 취합니다.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다면 직접 말하지 않겠어요? 당신은 늘 직접 이야기하지 않고 언어의 뒷면에서 주장하고 있으니까요. 포젬카는 커피를 다시 머금습니다.

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만남의 작별은 하인즈가 고하게 되는군요. 이번에는 하인즈가 먼저 포젬카가 좋아하는 커피를 주문합니다.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겁고, 천사처럼 부드럽고, 천국처럼 달콤하다는 그 커피를요.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포젬카 역시 하인즈의 커피를 보고서 알 수 있었네요. 어째서 이 만남을 계속하셨을까요? 글을 쓰는 여자에게 접근하는 취미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데. 글쎄요, 그렇지만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내면 세계가 확립되어 있으니까요. 제법 합리적인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포젬카는 더 이상 묻지 않습니다. 인간 세계를 바라보는 하인즈와 소리치듯 수많은 글을 써온 포젬카의 만남은 어찌 보면 골든 코스트에게 붙었던 것처럼 신의 선물이지 않았을까요. 


레몬농장주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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