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139분 중 39분
2021
시즌 2개, 그리고 영화
시즌 1: 5화 “이름 없는 감각”
출연: 하인즈, 위스퍼레인
장르: 드라마, 판타지
프로그램 특징: 계속된다. 질문이 튀어나오던 자리를 빼앗은 정적은 형언할 수 없는 감각을 준다. 그 정적은 가장 완벽하고 적절한 시간에 퇴장해야 한다.

 

...뭘 치고 싶은지 모르면 건반에 손을 대지 마.

https://youtu.be/lykFWJirapo

 

 

aturningscrew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삼촌이라고 건너 건너 들어오긴 했지만, 너무 바빠 가족들도 만나지 못한다고 하던데. 직업이...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조카들의 이름을 외울 일은 없어서. 이곳도 휴가라 처음 신세 지는 것이다...

나는 슬럼프에 빠져 있었다. 좋아하던 소설이 도저히 읽히지 않았고, 일기도 쓰기 싫었다. 마음이 가는 것이 없어, 어렸을 때 조금 배웠던 피아노를 다시 치기 시작했다. 항상 거실을 지키고 있는 피아노의 몸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다가섰다.

통성명과 간단한 소개는 했지만 대화할 일은 없었다. 저택에 나와 그가 단둘이 남으면, 같은 장소를 지나는 법도 없었다. 저녁 식사를 다 함께 할 때가 전부였지만 이 소녀는 접시 긁히는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조용하기만 하다.

부모님이 없는 오후에 피아노를 친다. 악보는 그저 그곳에 몇 년간 장식처럼 놓여 있던 것을 펼쳤다. 아버지가 피아노를 가르쳐주고 어머니가 자장가를 불러주던 시절은 이미 지났다. 악보가 글자처럼 나를 벗어나는 게 싫어서 이 곡을 전부 치지 못한다. '조금 빠르게'도 지킬 수 없다.

드뷔시 아라베스크 1번. 이 곡이 끝나지 않는다. 매번 같은 구간에서 점점 느리게 치다 멈춘다. 신경이 거슬렸지만, 연습이라 생각하고 참았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면 안 된다. 그럼 칠 생각이 없는 거다. 일주일째 되는 날, 책을 덮어버리고, 결국 계단을 내려간다.

나는 이번에도 손가락을 멈췄다. 건반을 천천히 누르는 동안, 발소리가 들려온다. 놀라 일어났다. 인사를 하려는데, 그는 화난 얼굴이다. 무섭게 느껴져서 숨을 참았다. 건반이 세게 눌리고, 높낮이를 달리하는 무질서한 음이 길게, 무언가를 채운다.

"...뭘 치고 싶은지 모르면 건반에 손을 대지 마."
"네?"

화가 나 내려오긴 했지만, 어린애를 겁줘버렸다. 실수다. 나는 이를 악문 채 또박또박 말한다. ...피아노를 왜 이리 갈등하며 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이 곡의 끝을 들어야 했다.

"그렇게 치는 게 아니라고. 다시 앉아. 이 마디부터 다시 시작해."

갑자기 손을 붙잡혔지만, 삼촌은 악보를 처음부터 설명해주며 건반 위치까지 다시 알려주었다... 그날, 이 곡이 마음에 드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니, 이에 집중하느라 집에서 한 번도 위치가 바뀐 적 없는 사슴뿔 장식이 눈에 띄지 않아서 마음이 편했던 것 같다. 그런 것 같다... 계속 연습하게 됐다.

...

 

이 산은 꽤나 시내와 거리가 멀어 나갔다 오려면 무조건 차를 타야 했다. 그래서 휴가를 오기에 좋았다. 나의 한 곳에 가만히 있지 못하는 괜한 버릇을 그저 산책과 휴식으로 해결할 수 있어서. 숲길에는 다양한 생물의 흔적이 있었고, 오랜만에 그런 환경에 놓인 것도 즐거웠다. 그 사이의 성가신 피아노 사건만 빼면 모든 조건이 완벽했다. 아니... 이 또한 지나고 나서는 실력이 늘어가는 걸 보며 만족스러웠던 것 같기도 하고. 

 

"친척들도 사냥을 그만두었다 했지만 저는 그 흔적이 가득한 것이 싫었어요."

 

이 산은 내가 태어나고 부모님이 저택을 짓기 전까진 사냥터였다고 했다. 당연히 내가 총소리를 무서워할 테니, 아예 땅을 샀다고. 그렇다면 사냥의 흔적까지 모두 치워버렸다면 좋았을 텐데. 차라리 거기 가족사진을 걸어놓았다면 좋았을 텐데. 
어려서 눈이 온 뒤 생긴 사슴 발자국을 따라 걸었던 적이 있다. 내가 밟으면 사슴의 흔적은 사라져버렸다. 

"새를 죽이나 사슴을 죽이나 우리가 인간으로서 자연을 대한 모습은 같아. 인간들이, 우리의 조상들도, 그 행위에 이토록 죄책감을 느꼈을까?ㅡ그러니까, 네 아버지도?"

그 후로 가끔 단둘이 얘길 나누게 되었지만 아직 어린애다. 마음이 진정되지 못하면 아무것도 제자리에 앉아 할 수 없고, 부모님의 보호에서 벗어난 적 없는 심약함(그렇다고 그렇게 자식 자랑을 들은 적은 없는데). 피아노 건반에 남은 지문마저 신경쓰이겠지.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에게서 벗어나긴 힘든 일이다. 어쨌든, 마침 어른이고 곧 떠날 내가 그에겐 괜찮은 상담 상대라 느껴졌겠지. 

그는 내겐 사냥이 무슨 대수라는 듯 이야기했지만, 확실히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그랬으니까 싫은 거예요. 그렇게 말하려는 걸 삼키고...

사냥 얘기는, 글쎄. 우리가 그때 태어났다면 슬퍼했을까? 오히려 내일의 양식에 감사했겠지. 하지만 그는 그게 중요한 것 같지 않다. 사슴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그 안에 깃든 생명력을, 어떻게 하고 싶은 것 같았다. 아닌가? 그저 가족에게 불만이 많은 건가?

 

"그렇게까지 싫어할 이유가 있니?"


내가 무서운 꿈을 꾼다고 해서 사슴 목 박제를 치운 적이 있다. 거실을 지날 때마다 그 눈을 보니까, 남은 몸이 어딨는지 몰라서 무서웠다. 남은 몸이 집안에 돌아다닐까 봐. 삼촌에게 그런 이야기까지 할 수는 없었다. 단순히 그런 이유에서 불만을 가졌다고 하면, 어린애 취급을 받겠지. 충고를 들으면서는 그저 말을 돌려야겠다, 생각했다. 

"사냥도 문화고, 그 사용이 인간을 이어온 방식이야. 지금도 충분히 그러해. 넌 좋아하는 문화가 정해져 있고, 그로부터 멀어서..."

나는 삼촌이 창밖으로 보고 그리웠다고 말하던 나무의 종류를 구분하지 못한다. 잎사귀를 구분하지 못한다. 그래서 모두가 일이 있어 나간 날 삼촌이 두고 간 구두에 발을 넣었다. 그런다고 해서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텅 빈, 맨발인 것 같은 그 느낌이...

"낯설 뿐이지."

이제 혼자 피아노를 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안다. 내가 치고 싶은 건...




"어쩐지... 기묘한 이야기였어요."
"저도 그리 호감 가는 내용은 아닙니다."
"그래도 굳이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가 있으시겠죠."
"이렇게 제한된 공간 설정에서 세트를 얼마나 잘 만드느냐도 매력이죠. 저택의 벽지 색깔을 보세요, 이미..."
"아, 거기서부터... (음악이 아니었군요.)"



I'm not for my things they're of myself belong.
(...)
To get your attention.
-Stoker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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