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다면 개죽음이 나아. 모건은 그렇게 말했다. 황야에서 키아베가 죽는 줄 알고 놀랐다던 아오스타의 말 뒤에 따른 말이었다. 그러나 여긴 식당이었다. 아오스타가 발끈하고, 같은 테이블에 있던 브로카와 제이는 아랑곳 않고 있었다. 키아베는 그냥 웃었다.
그 웃음으로 잠시 무마된 것 같은 분위기. *시라쿠사 일상 용어*라거나 *시라쿠사 욕설*이 나와선 안 된다는 건 알고 있었다.
-오해하지 말고, 선은 지키자고. 응? 그래, 너희는 나와 다른 곳 출신이니까 좀 입장이 다른 거라고. 이해하려고 해봐!
폭탄을 던진 당사자가 말하기엔 좀 건방진 말이었다.
-과거 숨긴다고 칼부림 낼 땐 언제고 이제 그냥 말하는군요.
퉁명스런 지적이 들어와도 생글생글 웃는다.
-난 수다쟁이라서 이게 오래 버틴 거야. 그래도 로도스는 그닥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아서. 좋은 직장이잖아~ 회 떠주는 제이 군도 부를 수 있고.
-동네 친구냐.
-원래 외로운 사람이 말이 많아.
-내가 외로워 보여?
그렇게 묻는 모건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랐다. 어딘가 아쉬운, 순간 슬퍼 보이는 목소리.
-전 애인들은 나랑 헤어지기 전에 '넌 그러다 평생 외롭게 살 거다'하고 저주했단 말야.
-어떻게 헤어졌길래.
이건 차라리 재밌는 얘기일지도 모른다고 다들 생각했다.
-아니, 뭐, 잠깐 싸워도 그냥 자기가 졌다며 내빼잖아. 나약한 애들만 만났어.
-머리채를 잡거나 칼로 찌르거나 집에 불을 지르고 나오려다 미수로 그쳤을 것 같은데요.
-그 중 두 개는 맞아.
-그냥 외롭게 사세요.
-너무하네. 어린 시절의 잘못은 반성하고 있어.
-반성하냐?
-사실 안 해.
-당신 같은 사람은 외로운 게 인류를 위한 길이다.
-정말 나처럼 매력적인 여자랑 사귈 생각조차 안 들어?
-안 들어.
-네.
-친구로는 앵간?
모건은 유혹하듯 다가섰던 몸을 내빼고는 피식 웃는다.
-너네같은 사람들이 맘에 들어. 내 개죽음에 필요한 사람들이니까.
아오스타는 다시 눈살을 찌푸린다.
-아니, 그래서 그 개죽음이 대체 뭡니까?
그런 질문은 처음 받아봤다는 듯 모건이 눈을 굴린다. 말로 정리하는 것이 처음인 듯하다. 좋은 질문이네. 물어봐주는 사람도 처음이야.
리듬을 타듯 손가락을 까딱이면 한참이 지난다.
-다들 내가 죽은 걸 알면 나를 전력으로 무시하고 잊어버리려 하는 거지!
다들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쉰다. 그게 무슨 대단한 의미라고. 실망감이 느껴진다.
-죽으면 흔적도 남기기 싫다는 생각 다들 안 해?
-죽어서 이 몸의 활약이 대대로 전해져야 하지 않겠어?
키아베와 모건은 눈을 마주하고 싱긋 웃었다. 솔직히 그 의미가 무엇인지 바로 알아차리는 사람은 없다. 둘은 동류일까. 모건은 테이블에 잔을 계속 굴리며 눈앞의 친구들을 바라보았다. 손가락이 가볍게 움직이고, 아슬아슬하게 잔이 빛난다.
-이 얘기는 여기서 끝. 무슨 얘기 하고 있었더라?
-그래요. 황야로 돌아가죠. 키아베가 거기서 사람 심란하게나 만드는 음악을 틀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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