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139분 중 39분
2021
시즌 2개, 그리고 영화
시즌 1: 5화 “이름 없는 감각”
출연: 하인즈, 위스퍼레인
장르: 드라마, 판타지
프로그램 특징: 계속된다. 질문이 튀어나오던 자리를 빼앗은 정적은 형언할 수 없는 감각을 준다. 그 정적은 가장 완벽하고 적절한 시간에 퇴장해야 한다.

하인즈와 위스퍼레인의 일상 속 막간

 

집게님

 

 

1.
해파리는 심장이 없대요.
그렇다고들 하죠.
그래서 위스퍼레인의 심장 소리를 듣고 싶어졌어요.
단지 그런 이유로요?
네. 단지 그런 이유로요.



2.
요즘 항상 빛이 들어오는 곳에 서 계시네요.
바쁘니까 갑판까지 나가긴 뭐해서요.
아... 돌아오기 번거로울 수 있겠네요.
네.
이렇게 서 계시면 역광으로 비쳐보여서 박사님의 얼굴이 잘 안 보여요.
보는 편이 좋은가요?
음, 그건......
역시 우린 카메라가 아니니까 실루엣으로 충분하지 않죠.

 

칠등님



3.
위스퍼레인. 뭐 하나 물어봐도 돼요?
네.
하인즈라는 이름 별론가요?
네...?
어쨌든 제 이름인데 이름을 꼭 불러주는 사람이 얼마 없어서... 다들 박사님, 박사. 하잖아요. 아, 헨리라고 불러도 된다고도 했는데 아무도 신경 안쓰고,
으음... 박사님은 박사님이니까, 코드네임이 아니라서...?
그러니까 제가 '박사'라는 점이...
...
아니에요. 뭐가 이렇게 괜히 신경쓰이는지.
...커피 드실래요?
설탕 빼고요.
항상 그랬잖아요.
하하.

 


4.
아마 평생 영화만 보고 있어도 지금까지 세상에 나온 영화를 다 보지 못하겠죠. 
네.
그러니 볼 작품 하나하나를 제대로 고르는 것도 중요해요.
그렇죠.
저희가 간직하는 시간도 그 시간의 작품과 연결되는...
...그래서 하인즈 박사님은 '감염쉐라그에서 살아남기'는 보지 않으시겠다는 거죠.

 

 

5.
가끔은 소등이라는 말이 무서워요.
정전도 아니고요.
그 말이 마치 모든 게 사라질 걸 예견하고 있는 것만 같아서요.
그러면 빛이 두려운 거군요. 위대한 것들은 모순적이에요.
...박사님은 빛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 그런 질문은 정말 당신이 아니면 못 들을 것 같아요.

 

칠등님

 


6.
언젠가 당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모두 같이 보고 싶어요.
(놀란 표정을 한다)
아, 물론 당신도 좋아하는 영화를 많이 잊어버렸을까 싶긴 했지만요. 적어도 저보단 많이 알잖아요.
후후... 비디오를 고르는 모습을 보면 그렇지만도 않던데요.
그랬나요? (그 얘기를 하려던 게 아닌데.)

 

7.
(비가 내린다고 쓴다. 창밖은 맑다. 햇빛이 내리쬔다.)
(해를 비추는 카메라.)
(비가 내린다. 비가 내린다.)
(그렇게 비가 내리게 한다. 비를 쌓는다.)
(비가 내린다고 쓰면 미래의 비가 온다. 먼저 와있는 미래의 빗방울.)
그런다고 비가 오진 않아요.
알아요. 그리고 전 비를 싫어해요.

 


8.
낭만은 과거를 향한 것이라고들 생각하죠.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도 사랑과 낭만을 느낄 수 있을까요?
음... 박사님은 제게만 이렇게 질문하는 건가요.
'이렇게'라는 건? 저는 그저 위스퍼레인이 낭만이라는 말에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견해를 물었을 뿐입니다.
제가요?
네. 당신은 항상 무엇인가를 그리워하고 있잖아요. 그거야말로 낭만의 뿌리죠. 
...
그런 의미에선 당신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낭만을 가지고 있지만, 아무래도 위스퍼레인 씨는 더...
(다음 말을 기다린다)
'모르는 것'에 대해 상상하는 감수성이 풍부한 건 아닐까 했죠.

 

 

9.
입사한 지 얼마 안 됐는데, 괜찮나요? 
너무 많은 소리가 낯설어요.
시끄럽다고 하면 바깥의 소리가 더 그렇지 않나요. 기준이 뭐죠?
그러게요... 모르는 소리라서, 일까요.
그럼, 익숙해지길 바라겠습니다.
(위스퍼레인은 나중에야 그 소리가 어땠는지 정정할 수 있게 된다)


10.
언젠가는 이유도 목적도 없는 행위를 하고 싶네요.
그런게 뭐가 있나요?
수수께끼라고 생각해보세요.
사실 그보다 박사님이 이유도 목적도 없이 움직인다는 게 상상이 잘 안 가요...
아무래도 그렇죠. 그럴 시간이 없으니까요. 음? 왜 그런 표정이죠? 불쌍하다는 듯이.
안타까워서요...
안타까워할 필요는 없죠. 그저 많은 일이 끝나고, 제가 '박사'라는 호칭을 벗게 되면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아...
여행도 저답지 않나요?
...아뇨. 오히려 여행 계획이 궁금해요. 어딜 먼저 향할지 상상도 되지 않네요...
당신이 계획을 대신 짜줬으면 좋겠네요.
제, 제가요?

 

 

11. 

때로는 심장이 뛰는데 죽어가는 것 같다고 생각할 때가 있어요.
...
박사님?
신경 검사는 받아보셨나요? 신경의학 환자 사례 중 뇌에 문제가 생기면 신체 인식이,
아, 아뇨... 그런 문제가 아니라...
걱정돼서 하는 말입니다. 몸의 변화가 아니라도 하나하나 놓쳐서는 안 돼요.
(큰일났다...)

 

 

12.

바다의 색은 언제나 다른 것 같아요. 그 오묘함은 두려움도 경외로 바꿔버립니다... 이베리아의 바다만 해도 다양한 색으로 빛나죠. 코발트 색, 토파즈 빛, 검푸름, 때로는 초록빛...
전 바다의 색이 깊이와 생물들 때문에 다르다고 여겼는데, 실제로 기후와 생태가 영향을 준다고 하더군요.
그런가 하면 플랑크톤이나 오염도도 큰 기여를 한다고,
...
...
혹시 제가 또 지나치게 말했나요?
분명 그렇지만, 익숙해요. 그러지 않으면 서운할 것 같을 정도로.

 

 

13.
박사님은...
네.
당장 내일 테라가 멸망한다면 뭘 하실 건가요? 
어떻게든 막을 수 없는 일임을 가정한 거죠?
음... 네.
세상의 마지막에 무엇을 할지 물어보다니, 사람을 시험하기엔 알맞은 질문이네요. 이런 질문을 하는 의도는 뭔지 항상 고민됩니다. 즐거운 의미로요.
저는 일단 원석충을 만져볼 겁니다.
네?
그 표면 질감이 궁금했는데 계속 폭발한다나, 저도 뭐 야생의 질병이 옮을 수 있다거나 걱정하길래 못 만져봤거든요.
그런...
그리고 저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다면 대화하고, 여행을 가기에 하루는 너무 짧으니... 바빠 못 읽었던 책을 읽어야겠네요.
함선 내부의 곳곳에 놓인 시설들에서 읽는다면 좋겠네요.
책을 읽어도, 그 내용은 모두 소용없어질 텐데도요...
당신이라면 영화를 보자고 할 줄 알았는데.
아, 영화라면... 보시겠어요?
영화가 끝나는 순간 세계가 끝나도록 맞춰서 상영해준다면 볼 의향이 있습니다.

 

 

14.
전에 어쩌다 생각했는데 말이죠.
뭔가요?
테라에는 정처없이 방랑하는 의사들이 꽤나 많은 것 같습니다만, 그들을 모아 각지에 치료를 지원하는 네트워크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한 사람은 없었던 걸까요?
...
...
있었다면... 고민해봤을 것 같습니다.
로도스에 들어오는 일도 고민한 것처럼요.
그땐 절 모르시지 않았나요?
전해 듣기야 했죠. 어쨌든, 그 생각을 좀 미리 했다면 여기 스카웃하기 전에 메딕 여러분께 더 자유로운 의료 서비스를 부탁할 수 있었을지도...
이미 계획서를 만들어두셨을까 봐 무섭네요...
당신이 로도스를 나간다고 하면 그때 공개하려 합니다.
정말요?
농담이죠...

 


15.
무성영화는 어쩌면 연극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무언극... 일까요. 그래서 바깥에 사람이 있었고.
그렇게도 볼 수 있겠군요. 유성영화의 등장으로 영화는 점점 무대에서 멀어진 것이라 생각했죠.
그럼 스크린은, 결코 무대라 비유할 수 없을까요?
(긴 대화가 시작되려는 순간이다)

 


16.
영화를 100번 상영하면 영화 속의 인물이 백 번 죽는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그러하지 않은 사람은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위스퍼레인은 어느 쪽이죠? 
글쎄요... ...박사님은요?
먼저 말씀해보세요.
아뇨, 먼저...
...
...
동시에 말할까요?

 


17.
박사님, 서류를 검토하는데 오류가 있어서요.
네, 뭐죠.
이쪽, 이쪽, 그리고 뒷페이지 여기에... 대문자와 소문자가 구별되어야 하는데, 글씨가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필기체라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일단 서류니까 말씀을...
최근 일주일 간 당신에게 들은 말 중 가장 긴 것 같네요.
네...?

 

 

18.
제 경어가 사람들에게 거리감을 주는 것 같다고도 하더군요.
설마 또 박사 설문조사를 받으셨나요...
그게 문제가 아니라, 그냥 말을 놓아볼 사람이 없다는 거죠. 해보시겠습니까?
아...
...
...
(침묵의 사무실)
...그냥 원래 하던 대로 합시다.
네...

 

 

19.
해결할 수 없는 재난과 사건, 해결할 수 없는 슬픔을 박사님은 어떻게 견뎌내는 건가요? 그러니까, 그런 일을 겪어오면서...
꼭 슬픔이 아니라도 그 사건이 당신 안에서 여전히 진행중이라면 그에서 비롯된 감정도 진행되죠. 그래서 그 사건을 끝내버립니다. 간결하게, 몇 문장으로.

 

 

20.
솔직히 말씀드리는 거지만, 위스퍼레인 씨의 평론이 뛰어나다는 걸 나중에야 인정했습니다.
...내용에 문제가 있었다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뇨. 영화를 보는 시간 자체가 철학에 가까우니, 저처럼 영화를 본 뒤 그럴듯한 분석을 쓰는 것은 어떤 관점에선 예의가 아니죠.
즉, 제가 미사여구로 영화에서 드러나는 철학의 가능성을 흐린다는 뜻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저는 그 사실을 깨달아, 당신의 평론이 영화를 보는 순간의 철학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임도 깨달았죠... 가공 없는 그것이 사람들에게 더 와닿을 것입니다.
(좋게 봐주신 건 감사하지만, 뭔가 시작됐다...)

 

 

21.
위스퍼레인, 비눗방울을 유지하는 법을 생각해봤는데요.
아... 어떤 약품인가요?
간만에 연구실에 가려다가 그쪽은 쏜즈 씨와 엘리시움 씨가 수고하고 있어서요. 입체로 구현하는 투명 디스플레이 스크린을 설치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네...?
항상 같은 곳에 떠있는 게 비눗방울을 좋아하는 여러분에게 낭만적이지 못하다면, PRTS의 계산으로 일정 시간마다 등장 패턴과 장소를 다르게 할 수도 있겠지요.
화, 확실히 그렇겠네요.
그러면 프로그램을 의뢰해야... 적임자가 누굴지 5순위까지 뽑았습니다만, 같이 고르시겠습니까.
......좋아요.

 


22.
(하인즈 박사님이, 그것도 여가 시간에, 이렇게 집중해서 잡지를 보다 잠드시다니. 이런 일은 처음이야.)
(영화 잡지를 구독하기 시작하신 걸까.)
(...)
(에기르식 가구 브랜드 카탈로그...)
(그것도 아주 옛날 것.)
마음에 드십니까?
주, 주무시는 거 아니었나요...
신경쓰지 말고 보세요.


23.
위스퍼레인 씨의 영화 평론들 말이죠.
뭔가 질문이 생기셨나요?
꽤 많아졌는데... 모아서 소책자로 만든다거나 하는 건 생각해본 적 없으신가요.
서, 설마요. 그러기엔 부족합니다...
그게 제가 당신을 기억하는 방법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아쉽네요.
(침묵)

 

 

24.
이 소설에 계속 이베리아어가 나오네요. 이 단어는 당신이 알려주었던 것 같고요. 
(하인즈는 무어라 읽는다.) 
... 
(위스퍼레인이 무어라 다시 읽는다. 조금 다르다.) 
그렇게 읽는군요. 
아뇨, 마음에 들어서. 
강조하려고 번역하지 않은 단어 같아요. 내용도 좋아하실 겁니다.

 


-외전-

 

0123
깡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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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iché 막간(cast. H&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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